top of page
작성자 사진Jay K. Yi

끊임없는 영어공부 인생

전문분야에 근무하는 한국인들은 유치원을 들어가기 이전부터 시작해서 직장생활을 지속하는 50대까지 전체 공부 시간의 최소 30% 이상을 #영어에 투자하는 것 같다. 대충 인생의 2/3 동안 단어의 어원이나 문장의 어순이 완전히 생소한 영어를 #국제어로 활용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과 시간을 투입하는 것이다. #베이비붐 말기 세대라서 그 이전 세대보다는 비교적 양호한 환경에서 살아왔지만, 지방 중소도시에서 중고교 시절을 보냈으므로 #원어민을 만날 기회도 그들의 발음을 들을 기회도 없었기에 영어 공부는 고난과 좌절이었다.

중학교 입학과 더불어 영어 알파벳을 익히기 시작하고 교과서를 중심으로 읽고 이해하는 영어 공부가 시작되었다. 열심히 단어를 외우고 문법 공부로써 문장 구조를 이해하고 이를 기반으로 해석하여 우리말로 이해하는 #문어체적인 접근이었다. 이는 대학 입학 때까지 지속되어 어휘력을 기반으로 문법과 독해 위주의 시험을 치렀다. 그 당시 필수 참고서였던 중학교 시절의 빨간색 표지 #삼위일체 영어와 고교 때의 #성문종합영어에 대한 기억이 새롭다. 성문종합영어는 거의 외우다시피 했었기에 #문법 부분의 예제뿐만 아니라 #단문 독해와 #장문 독해도 눈에 선할 정도였다.

어학실습실은 대학 1학년 교양영어 수업 중에 처음 접했었다. 칸막이 자리에 앉아 헤드폰을 끼고 있으면 조교가 틀어 주는 녹음기의 내용을 듣고 빈칸을 채우거나 따라서 말하는 내용인데, 한마디로 충격적일 정도로 아무것도 들을 수 없었다. 그래도 서울이나 대도시 출신들은 #AFKN이라는 주한미군 방송과 FM 라디오를 접할 수 있었고 그중에는 팝송을 듣고 따라 불렀기 때문에 훨씬 나아 보였다.

이공계였기에 대학원 과정 진학이나 취업 등에 영어가 절실한 요건은 아니었지만, 개인적으로 영어 회화에 있어서는 어느 정도 수준에 이르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그래서 입학과 더불어 영어 회화 테이프를 사기도 했고 방학 중에는 #TOEFL이나 #Vocabulary 22000 등의 강좌도 수강했었다. 우리말로 설명하는 방식이기에 친근해 보여서 대학 입학 때 #정철영어 회화 테이프를 구입했었지만, 폐기 때까지 보관만 하다가 테이프 서너 개만 듣고 만 기억도 있다. 다만 그 당시 직장에 다니시던 형님이 30만 원의 거금으로 구입하셨던 6권짜리 #Michigan Action English는 내가 대신 본전을 뽑았다. 마치 내가 University of Michigan이 있는 #Ann #Arbor에서 대학 생활을 간접 경험을 할 정도로 열심히 테이프를 들었었다.

#홍릉에서 #대학원을 다닐 때는 그 바쁜 와중에도 휘경동에 있는 SDA #삼육영어학원에서 원어민 회화 반에 등록하여 수강했었다. 임도 보고 뽕도 따듯이 원어민 주도의 회화 공부도 하면서 청춘 세대들끼리 교제를 할 수 있기도 하였다. 축제에도 같이 가고, 서로의 친구들을 연결해 주어 그중에 한 쌍은 결혼까지 골인하기도 했다. 어쨌든 이 기간 동안 영어 청취력 향상을 위해 학원 수강뿐만 아니라 듣기 장비 구입에도 상당한 돈을 투자했었다. 즉, 80년대 중후반에 과외 알바로 모은 10만 원을 들여서 소형 #Sony 모노 카세트 리코더를 구입했었고, 90년대 중후반까지는 Sony #Walkman 유를 고장 날 때까지 두어 개 구입해서 사용했었다. 또한 #BBC나 #VOA 등의 생생한 영어방송 청취를 위해 Sony 소형 #단파 라디오도 구입했다. 스마트폰을 이용해서 다운로드한 회화 파일이나 전 세계의 영어 방송을 앱을 통해 Online으로 들을 수 있는 요즈음과 비교해 보면 그야말로 격세지감을 느낀다. 그렇게 본다면 어휘력 향상을 위한 단어 암기 방법도 근본적으로 달라진 것 같다. 즉, 우리 세대는 이면지에 단어를 반복해 쓰면서 #발음기호대로 소리 내어 읽으며 암기를 했다. 아울러 언제 어디서나 볼 수 있도록 단어장을 작성해 가며 공부했었다. 근래에 들어서는 대부분 #전자사전(물론 요즘은 스마트폰이겠지만)에서 찾아,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방식으로 단어를 익히는 것 같다. 어떤 방식이나 효율성만 높으면 되겠지만, 철자 암기에 있어서는 쓰면서 익히는 방식이 더 좋았던 것 같다.

직장에 다니면서도 회사에서 주기적으로 요구하는 영어 자격요건 통과를 위해 회화, 발표, 협상, 문서작성 등에 대한 영어 공부를 끊임없이 해 왔었다. 2000년대 중반부터는 회화 능력 향상을 위해 #전화영어 등을 수강했었다. 초기에는 전화영어가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등 출신의 강사들이 중심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필리핀인들로 대체되어 전반적인 품질이 떨어졌던 것 같다. 재직하는 회사와 시대에 따라서도 요구하는 영어시험 유형이 다양했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공기업에 다닐 때인 80년대 말에는 독해, 작문, 1:1 원어민 회화 등으로 구성된 공무원들 해외 파견 때 요구하는 #LATT라는 시험을 치렀었다. 이어서 세계경영을 추구하던 대기업의 중앙연구소에 근무할 때는 특이하게도 #TOEFL 시험을, 40대에 이직한 공기업적 민간 기업에서는 #TOEIC 시험을 치렀었다. 또 40대 후반의 팀장급일 때는 #실용영어를 중시한다는 명목으로 TOEIC #Speaking 시험을 쳤고, 50대 초반에 초임 임원으로서는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주관하는 비즈니스 영어 시험 #BULATS (뷸랏)과 유사한 형식의 원어민과 Face to Face 스피킹 테스트를 치렀다. 말하자면 대학 졸업 이후에도 직장의 요구에 의해 끊임없이 변화된 형태의 영어 시험을 응시해 왔고, 이를 위해 지속적으로 공부해 왔다고 할 수 있다.

공부 방식에서 얘기했듯이 사실 어휘력, 문법, 독해 등과 관련된 문어체적 성격의 시험은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Listening과 Speaking 등 실용성이 중심이 되는 구어체적 시험은 대비가 쉽지 않았다. 특히 중년 이후에 치르는 TOEIC Speaking 유형의 컴퓨터를 기반으로 하는 회화 시험은 집중력과 순발력이 요구되기 때문에 특히 힘들었던 것 같다. 40대 이전에는 TOEFL>TOEIC>TOEIC Speaking 순으로 대응이 어려웠다면, 그 이후에는 기억력과 순발력의 문제로 시간적 여유가 비교적 주어지는 BULATS 같은 Face to Face 응답 방식의 시험이 조금 편했던 것 같다. 어쨌든 직장인으로서 직장 내 승진과 생존을 위해 끊임없이 영어와 떨어질 수 없는 환경에 있었기에, 요즘 세대에 비할 바는 못 되지만 영어에 대한 울렁증이나 두려움은 비교적 없는 수준에 있는 것 같다.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하면 영어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우리의 생존 여건이 안타깝기도 하다. 영어가 모국어인 국민들은 우리가 영어에 투자하는 시간 동안 무엇을 했을지 궁금하다. 그 많은 영어 공부에 투입했던 시간을 가족들과 즐거운 시기를 함께하며 취미나 여가 생활에 좀 더 쓸 수 있었으면 더 보람찬 #중년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2019. 8. 7. 20:25

조회수 0회댓글 0개

최근 게시물

전체 보기

건설 사업의 특징 및 Risk 관리

발전소 설계 및 시공과 관련하여 약 2년간 대형 건설사에 근무한 경험이 있다. 건설업, 즉 EPC 비즈니스란 무엇일까? 통상 새로운 구조물을 설계하고 필요한 설비를 구매 후 시공하여 발주처에 제공하는 용역을 얘기한다. 즉 발주처를 대신하여...

원자력발전에 대한 단상

2018년 봄을 여는 3월에는 미세먼지가 주요 뉴스가 된 것 같다. 그 근본 원인이 무엇인지 아직 명확하지는 않지만 중국발 요인이 상당하지 않을까 추정된다. 1990년대 까지만 해도 서울 시내의 공기 질은 매우 나빴던 것으로 기억된다. 디젤로...

건설 수주영업에 대한 소고

오래전에 대학원 과정에서 벤처사업가의 대명사였던 메디슨이란 기업의 이민화 사장 강연을 들은 기억이 난다. 그 당시로서는 혁신적이었던 초음파 의료 영상진단 장비를 국산화하여 판매하고 있었다. 자신의 전공인 전자공학을 기반으로 초음파진단 장비를...

Comments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