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에 대학원 과정에서 벤처사업가의 대명사였던 메디슨이란 기업의 이민화 사장 강연을 들은 기억이 난다. 그 당시로서는 혁신적이었던 초음파 의료 영상진단 장비를 국산화하여 판매하고 있었다. 자신의 전공인 전자공학을 기반으로 초음파진단 장비를 개발하여 사업화하였으므로 공학도들의 부러움과 벤치마킹의 대상이었다. 연구개발, 제품 생산, 그리고 직접 판매해본 당사자가 강연 중에 한 “비즈니스의 꽃은 영업”이라는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대학 졸업과 더불어 전공분야를 가로지르며 석/박사과정을 공부했고, 취업도 연구소와 기업을 넘나들었으므로 당연히 사업의 꽃이라는 영업도 해 보고 싶었다. 영업에는 백화점, 할인점, 소매점 등에서 다양한 물건을 팔거나 가가호호 방문 판매하는 Sales 영업이 있다면, 조선, 건설, IT System 구축, 컨설팅 등과 같은 수주영업이 있을 것이다. 당연히 모든 영업에는 판매자의 브랜드 파워, 네트워크, 가격 경쟁력, 기술 경쟁력, 품질 경쟁력 등이 핵심이 된다. 그러나 사업 초기 단계부터 모든 요소를 갖추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자사 제품의 강점 분야를 최대한 활용하고 부족한 부분은 다른 방법으로 대체할 수 있도록 강구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영업 전략이 될 것이다. 영업 전략의 중요성은 일등 제품이나 최저가 제품이 아니더라도 소비자가 제품을 구매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각종 제품이나 금융 상품 등을 판매하는 Sales 영업은 적성과 거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신에 공학적 전문성을 기반으로 각종 용역이나 프로젝트성 사업을 수주하는 영업은 가능할 것으로 생각했다. 이에 따라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건설 영업을 일부나마 경험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우리나라 건설 사업은 70, 80년대 중동 진출에서 꽃을 피웠다. 그 당시에는 근면한 건설노동자들과 저임금으로 가격경쟁력이 경쟁사 대비 우위에 있었다. 그러나 근래에 들어와서는 중국, 터키, 동남아시아 국가 등의 건설사들이 가격 경쟁력을 압도하고 있다. 2010년 이후에는 중동에 진출했던 국내 대형 건설사들이 프로젝트 부실과 공기 지연에 따른 추가 원가 발생으로 큰 곤란을 겪었었다. 사우디를 비롯한 중동 국가들은 그동안 대형 건설 프로젝트 발주를 통해 서방 건설사들로부터 다양한 관리 경험을 습득한 상태에 있다. 이에 따라 프로젝트 수주 예산에 비해 Luxury 스펙을 요구할 뿐만 아니라 깐깐한 관리체계로 공기연장이나 Value Engineering 인정 등에도 매우 엄격하다. 프로젝트를 관리하는 중간층에 포진한 동남아시아 엔지니어들도 자신들의 재계약 등과 연계되어 더욱 엄격한 잣대를 들이 되고 있다. 해외 건설 사업도 쉽지 않은 환경이지만, 국내의 정부나 공공기관 발주의 도로, 교량, 항만, 공항, 발전소 등의 건설 사업도 매년 줄어들고 있다. 사실 2~3년 전부터 국내 건설사들은 건축 사업, 즉 아파트 시공 분야의 호황으로 유지되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하여튼 건설 영업은 발주처에 따라 국내 vs. 해외, 공공 vs. 민간, 도급 vs. 투자 사업 등으로 다양하게 구분된다. 건설 프로젝트 수주는 장기간의 투지와 끈기가 요구되는 영업활동이다. 프로젝트 발주 공고가 있기 훨씬 이전 단계부터 사전 영업을 강화하여 잠재적인 발주처와 정보를 교환하며 협력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사전 영업 단계에서 발주처가 궁금해하는 부분에 대해 각종 정보를 지원해 주며 아울러 인적 네트워크를 강화해야 한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입찰 제안서에 자사가 강점을 지닌 기술이나 경쟁력 부분이 중요한 평가 지표가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물론 내부적으로도 예상되는 설계를 바탕으로 견적 활동에 착수하여 입찰제안서 작성을 미리부터 준비해야 한다. 일단 입찰제안서가 공고되면 발주처와 직접 접촉하기에는 공정성 측면 등을 고려하면 쉽지 않다. 물론 이 단계가 되면 발주처도 건설사에 대해 더 이상 아쉬워할 부분이 없게 된다. 입찰의 당락은 결국 입찰 제시 가격에 달려있다. 물론 설계나 성능 차이에 대해 보정하는 절차를 거치게 되지만 최저가 입찰사가 우선 협상 대상자가 되는 것은 분명하다. 국내 사업의 경우에는 다양한 Source를 통해 발주 정보를 사전에 파악하여 대응할 수 있지만, 해외 사업의 경우에는 특별한 네트워크가 없다면 사전에 알기가 어렵다. 그러다 보니 Agent들이 관여하여 관련 정보와 인적 네트워크를 건설사에 연계 시키는 활동을 하고 있기도 한다.
건설사가 입찰에 참여하기까지 자체적으로 상당한 인적 자원과 재원이 소요된다. 영업은 물론 설계와 견적 조직이 동원되어야 하고, 프로젝트 예상 입찰가에 대한 타당성과 리스크 분석도 동반되어야 한다. 특히 해외 프로젝트의 경우에는 공개 입찰 정보를 입수한 후 수주 대응조직을 꾸려 입찰에 참가하기까지 시간적으로도 Tight 하다. 따라서 경쟁력 있는 견적을 얻는 과정이 시간적으로 쫓기게 된다. 이러한 자원과 시간을 투입하는 과정에도 불구하고 수주에 실패하게 되면 모두 매몰비용 처리가 되어야 한다. 이는 원가 악화 요인이 되어 후속 사업이나 수주의 경쟁력을 떨어뜨리게 되기도 한다.
문제는 입찰에 참여해도 그 성공 비율이 수 퍼센트 내외로 높지 않다는데 있다. 물론 건설 프로젝트 자체가 대형이어서 한 건만 성사되어도 경우에 따라서는 조 단위의 매출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건설사 간의 극심한 수주 경쟁으로 프로젝트 이익률을 높일 수 없는 상황에 있으므로, 설사 수주에 성공하더라도 엄격한 리스크 관리가 필수적으로 따라야 한다. 프로젝트 실행 단계에서도 예상치 못한 변동, 즉 환율, 자재가 인상, 사고 발생, 공기 지연 등이 있게 되면 프로젝트 손익에 심각한 영향을 준다. 사실 우리나라 건설사들의 EPC(설계/구매/시공 사업) 비즈니스는 이제 한계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다. 그룹사에 소속된 건설사들은 그동안 그룹의 외형 확장에 따라 그룹사내의 플랜트나 건축 물량을 소화하면서 성장해 왔다. 그룹사의 암묵적 지원이 있던 시기에 신공정을 개발하고 원가를 혁신할 수 있는 설계 및 시공 기술을 개발해 왔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제는 허허벌판에 나가서 온몸으로 맞서며 사업을 추진해야 하는 어려움에 처해 있다. 해외 사업에 있어서 이제 단순 EPC 도급 사업은 더욱 어렵다. 따라서 Financing 능력을 강화/확보하여 일정 지분의 투자가 동반된 투자 사업 형태로 추진해야 할 시점에 있다. 투자 사업에서 시공 부분을 직접 수행하여 수익으로 일부 회수하고, 최종적으로는 완공된 시설의 운영을 통해 추가 수익을 회수하는 단계를 염두에 두는 비즈니스를 지향해야 할 것이다. 2018. 4. 4.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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