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봄을 여는 3월에는 미세먼지가 주요 뉴스가 된 것 같다. 그 근본 원인이 무엇인지 아직 명확하지는 않지만 중국발 요인이 상당하지 않을까 추정된다. 1990년대 까지만 해도 서울 시내의 공기 질은 매우 나빴던 것으로 기억된다. 디젤로 운행되는 시내버스에서 나오는 검은 배기가스, 단독 주택의 연탄 난방과 저급 벙커 C유를 태우는 아파트 단지 굴뚝의 짙은 연기 등으로 겨울철 서울 시내 대기 수준은 최악이었던 것 같다. 마침 3월 말에 대통령의 UAE 방문을 전후한 사우디아라비아의 원자력발전소 건설도 주요 뉴스로 뜨고 있기에, 미세먼지와 아울러 원자력 분야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도 한번 정리해야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공과대학을 졸업한 이후 원자력 분야에 대해 공부하고 연구하며 아울러 직장 생활의 반 정도는 그 분야에서 일 했던 것 같다. 초기에 첨단 에너지원이자 제 3의 불로 각광을 받던 원자력발전은 1979년 미국 쓰리마일 섬에서 있었던 부분 노심 융용 사고로 그 대세론에 제동이 걸렸었다. 그리고 1985년의 구소련 체르노빌 원전에서 발생한 사고로 서유럽에서는 원자력 안전성에 대해 극단적인 회의가 일어났다. 그러나 각 국가별로 처해 있는 상황에 차이가 있으므로 그 대응책도 모두 달랐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중동 산유국들의 자원 무기화와 유가급등, 급격한 경제 성장에 따른 전력수요 급증, 북한의 존재에 따른 고립된 전력계통망 대응, 2010년 전후에는 이산화탄소 배출에 따른 기후변화 대응의 현실적 대응책, 한편으로는 잠재적 무기화 등 국가 전략적 측면에서 원자력발전소 건설은 꾸준히 지속되었다. 그 결과 원자력발전에 대해서는 한국형 노형 확보와 함께 건설 및 운영측면에서 모두 세계적인 경쟁력을 보유하게 되었다.
그러나 2011년 3월에 발생한 이웃 나라인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사상 최악의 방사선 재해를 일으키며 국내에서도 원전에 대해 극단적인 의견 대립의 계기가 되었다. 후쿠시마 사고는 동일본 대지진에 따른 대규모 쓰나미로 발전소내의 비상 디젤발전기가 침수되어 원전이 통제 불능 상태에 빠진 결과가 주 원인이다. 이에 따라 결국에는 냉각재인 물과 지르코늄 금속이 화학반응하여 만들어진 수소가 폭발하였다. 후쿠시마 원전의 수소폭발 영상은 원자력발전소가 원자폭탄처럼 폭발한다는 이미지를 국민들에게 각인 시키며, 후쿠시마 원전과 우리나라 원전의 노형 차이점이나 두꺼운 격납용기에 의한 방사선 물질 유출 방지 등에 대한 어떠한 설명도 국민들에게 설득력 있게 제시되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이에 따라 판도라라는 영화가 감성적으로 Appeal 하기도 했었다.
대형 사고가 발생하면 그 사고에 대한 교훈뿐만 아니라 해석과 대응책도 당연 개발 된다. 그러나 미국 쓰리마일 아일랜드 사고와 체르노빌 원전 사고의 교훈에도 불구하고, 일본 후쿠시마와 같이 쓰나미 발생 시에 원자로 내의 잔열을 제거하는 비상디젤발전기의 침수에 대해서는 결정적 허점이 노출 되었다. 원전은 일정 수준 이상의 지진이 발생되면 안전하게 비상 정지 되어 핵분열 반응이 중지된다. 그러나 일단 여기된(excited) 핵종이 안정된 상태로 돌아오는 과정에서 일정시간 잔열은 계속 발생 된다. 화석에너지인 석탄에 대비하여 300만 배 이상의 에너지 밀도를 가지는, 질량결손 에너지를 활용하는, 원자력 발전을 생각하면 비록 정격출력의 수 퍼센트에 이르는 잔열일지라도 즉시 펌프를 기동하여 제거하지 않으면 위험하게 된다. 이를 위해 1차적으로는 발전단지내의 타 발전소 전원, 2차적으로는 계통에 연결된 타 지역 발전소의 전원, 3차적으로는 발전소 내에 2기 이상으로 준비된 비상디젤발전기에서 전력을 확보해야 한다. 이 전원으로 주요 펌프를 운전하여 원자로에서 잔열을 제거해 주어야 원자로를 안전하게 냉각 시킬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후쿠시마의 경우에는 지진에 따른 1차 및 2차 전원의 상실과 침수에 따른 3차 비상 디젤발전기 기동 조차도 불가능 하게 되었다. 즉시 최고 경영진이나 주요 정책책임자의 지시에 따라, 비록 수 조원에 이르겠지만, 원자로 자체를 포기하고 바닷물이라도 주입해야 하는데 이에 대한 대처 절차에 심각한 오류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영향은 이산화탄소 배출에 따른 기후변화의 현실적 대안으로 간주되었던 원자력발전 Business에 심각한 악영향을 끼쳤다. 유럽 국가들은 산업 자체를 저전력 산업으로 전환하거나 훨씬 비싸지만 태양광발전이나 풍력발전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추진했다. 미국에서는 후쿠시마 사고 이전에 추진하던 수기의 원전 건설 사업이 후쿠시마 사고 대응책에 따른 안전성 강화로 사업 경제성을 확보하지 못하여 지연되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포기되었다. 일본의 경우에는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동일본 대지진 이후에 정시시켜 두었던 원전의 가동이 필수적이나, 여론을 주시하며 점진적 운전 재개를 진행 하거나 아니면 여전히 대기 상태로 보전 중에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신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따라 건설 중인 신고리 5,6호기가 공론화 과정을 거친 후 다시 건설이 재개되었고, 후속 사업으로 진행 중이던 신울진 3.4호기 사업은 사업 자체가 중단되기에 이르렀다. 그 동안 국가 전략사업으로 성장해온 원자력발전에 대한 정책적 변화는 원자력발전사업 주체인 공기업뿐만 아니라 관련 Supply Chain에서 사업을 운영해 오던 대/중/소 기업들에게 상당히 어려운 상황을 봉착토록 하고 있다.
원자력은 판도라의 상자와 같다고 할 수 있다. 무지막지한 핵분열에 의한 질량결손 에너지를 과연 인류가 안전하게 다룰 수 있을 것인지? 결국 2차 세계대전 종전을 위해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됨으로서, 원자력에너지는 태생 초기 단계부터 비극적으로 데뷔하게 되었다. 그 후 전 세계를 몇 번이나 초토화 시킬 정도의 원자폭탄과 그 보다 더 무시무시한 수소폭탄이 미국과 구소련을 비롯한 주요 5개국 중심으로 보유되어 인류의 안전을 위협했다. 이어서 인도, 파키스탄, 이스라엘, 이란 등 지역적 분쟁이 있는 국가들도 자국의 안전성을 스스로 보장 받는 다는 명분에 따라 외부 세계의 온갖 규제를 물리치고 비밀리에 원자폭탄을 개발하여 보유국의 지위에 올랐다. 현재는 북한이 핵무기와 그 운반 수단인 미사일을 개발하여 국제정치를 뒤 흔드는 이수 메이커가 되어 있다. 원자력에너지는 핵폭탄과 같은 결정적 군사적 무기가 될 수도 있고 원자력발전이나 방사선을 이용한 암 진료와 같이 인류에 평화적인 이기가 될 수도 있다. 원자력의 이러한 양면성이 사람들 마다 그 보는 관점에 따라 찬반을 뚜렷하게 갈라놓는 이슈가 되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보수와 진보를 정치적으로 가르는 슬로건이나 척도가 되기도 하는 것 같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원자력에너지에 대한 국가적 접근에는 여전히 차이가 있다. 특히 경제 성장 속도를 높이고 있는 베트남이나 산유국인 중동에서는 원자력발전에 대한 수요가 강화되고 있는 분위기이다. 중동에서는 이미 UAE에서 우리나라 노형의 원전 4기가 준공 단계에 있지만, 최근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원전 도입을 서두르고 있다. 재작년에 사우디를 방문하여 전력 수요에 대해 들어보니, 전력수요가 급증하여 자국에서 생산되는 원유를 현재 1/3에서 2030년에는 2/3까지 발전에 투입해야할지도 모른다고 추정하고 있었다. 이는 다시 말하면 수출할 수 있는 원유의 양이 현재 대비하여 50%로 급감한다는 얘기가 된다. 참고로 사우디는 발전사에게 전력 생산용 원유를 거의 공짜나 다름없이 지원하고 있어서 전력판매 단가도 kW당 15원 내외였던 것으로 기억 된다. 현재 보수적인 이슬람교를 바탕으로 강력한 왕정체제로 통치되고 있지만 아랍의 봄과 같은 국민들의 개방화와 정치 민주화 요구도 앞으로 없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를 위해서는 복지정책을 강화할 지속적인 국가 수입 증대가 있어야 하며, 관련하여 원유 수출량 유지 또한 필수적이라 생각된다. 따라서 발전용 원유 소비 대신에 원자력이나 태양광 발전에 크게 의존하지 않을 수 없을 것으로 생각 된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자국의 원자력발전소 도입에 우리나라의 원전산업 생태계와 체계를 벤치마킹하며 Reference로 삼고 있는 듯하다. 이미 우리나라에서 개발된 중소형원자로인 SMART 원전을 도입하기 위해 사우디 부지특성에 맞는 설계 용역을 2016년부터 진행 중에 있고, 아울러 자국의 젊은 엔지니어를 한국원자력연구원에 파견하여 양성 중에 있다. 작년 11월경에 상용원전 사업 추진을 위해 사우디의 원자력신재생에너지청을 방문했을 때, 사업 추진 관련 실무진들은 우리나라 원전 노형의 우수성에 대해 매우 호의적인 견해를 보여 주었다. 물론 자국의 우수한 젊은 엔지니어들의 고용 측면에서도 이웃 나라인 UAE의 Turnkey 방식의 원전 도입 대신에, 단계적으로 원전 인프라를 도입하며 중소형 원전과 상용원전으로 나아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한다. 아울러 한국의 발전을 지탱해 온 산업화 모델에 대해서도 매우 호감을 보여 주었다.
그런데 원전 수출은 실무진들의 선호도나 노형의 경쟁력, 즉 기술력이나 경제성과 같은 것만으로 성사되는 사업이 아니다. 국가 간에 총력전을 벌이는 국가 대항전이 필연적이다. 현재 미국, 프랑스, 중국, 러시아, 한국 등 5개국이 각축을 벌이지만, 사우디에 유리한 Financing 방안을 비롯하여 우라늄 농축이나 기타 전략적인 패를 내밀며 유리한 고지를 어느 나라가 차지할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원전 수출이 성사되면 단순히 건설단계의 설비 공급, 시공, 시운전, 핵연료공급 뿐만 아니라, 운전 단계의 운전 및 유지보수에 이르기 까지 천문학적 규모의 외화 획득이 가능하다. 이를 경제적 논리를 벗어나 국내의 탈원전 정책이나 원전에 대한 극단적인 반대 관점에서 바라보면 답이 없을 것으로 생각 한다.
우리나라의 전력산업은 상당히 특수하다고 할 수 있다. 유럽이나 대륙 국가들과는 달리 고립된 계통망을 운영해야 하고, 발전에 소요되는 석탄, 원유, 천연가스 등의 화석연료는 모두 해외에서 조달해야 한다. 요즈음 미세먼지 대책으로 석탄발전 조차도 경원시 되고 있는데, 천연가스의 경우 액화하여 수송하면 그 단가가 생산지 근처에 비해 우리나라에서는 3~4배에 육박하게 된다. 물론 일부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북한을 경유한 시베리아 천연가스 도입 구상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이에는 오랜 시간 여러 정치적인 해결이 필요할 것이기도 하지만, 성사되더라도 러시아와 북한에 우리의 에너지 생명줄을 상당 부분 맡기고 지내야 할지도 모를 일이 되는 것이다. 분명 우리나라에서 원자력에너지는 에너지 안보와 자립 그리고 잠재적인 전략적 수단차원에서 중요시 되었던 것 같다.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진영 논리를 떠나서 일정 수준 이상의 기저부하를 원자력이 담당해 주어야 할 것 같고, 적극적 해외 수출 추진은 물론 국내에서도 수명을 다하는 원전 대체 용도로 지속적인 사업 진행 방안이 필요할 것으로 생각된다.
원자력발전은 연료가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낮고 기술력을 기반으로 하는 국산 에너지나 다름이 없다고 생각 된다. 1950년 이후 수십 년에 걸쳐 나타난 글로벌 원자력발전 사업의 부침도 사실상 국제 유가의 변동에 후행 연계되어 움직이는 것을 볼 수 있다. 현재 중국의 경제 성장률 정체와 미국을 중심으로 대규모 채굴되는 쉐일가스가 국제 유가 안정화에 일조하고 있다. 그러나 언제 어떤 상황으로 국제정세가 변화하여 유가에 악영향을 미칠지 대비는 있어야 할 것이다. 특히 전력 소비가 비교적 높은 우리나라의 주력사업, 즉 반도체, 정유, 철강, 조선, 자동차 사업의, 지속적 경쟁력 확보와 저전력 구조로 산업이 전환될 때 까지는 원자력을 비롯한 경제성있고 안정적인 전력공급 체계는 필수적이라 하겠다.
진영 논리를 떠나 과연 무엇이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의 대처 방안이 될 것인지 이성적 관점에서 심도 있는 고민이 있어야 할 것이다. 원자력발전에서도 후쿠시마 대응 안전성 수단을 더하고 만의 하나 예기치 못한 유형의 사고가 감지되면 적극적인 초기 개입과 대처가 필요할 것이다. 또한 탈원전 이슈에 묻혀있는 사용후핵연료를 비롯한 고준위핵폐기물 처리와 처분에 대해서도 지속적인 기술개발과 정책적인 방안이 결정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기존 운영 중인 원전의 수명 후를 대비한 안전한 폐로와 부지 복구 및 그 활용도 시의 적절하게 준비해야 할 것이다. 2018. 4. 2.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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