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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진Jay K. Yi

교토삼굴(狡兎三窟)

10여 년 전에 최고경영진 주재의 사장단 회의에서 그룹 차원의 #원자력사업 추진전략을 발표하고 토의한 적이 있었다. 온실가스 감축에 대한 부담에 대응하기 위해 본업(本業) 운용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에 대한 근원적 방안을 찾기 위해서였다. 최소 10여 년에서 20여 년 앞을 대비하여 먼저 원자력 관련 엔지니어링 역량 확보가 필요했다. 이에 따라 그 당시 사업 추진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던 #중소형원전 개발 사업이 Stepping Stone로서 전사 차원의 참여가 결정되었다. 아울러 950도 이상의 열원을 발생시킬 수 있는 #초고온가스로와 이를 이용한 물의 #열화학적 #수소제조 국책 연구개발 사업에도 R&D 분야의 체계 구축을 위해 진입했다. 인력 확보와 조직 체계도 어느 정도 갖추고 기술 개발과 엔지니어링 부분을 Cover 하기 위해 관련 분야에 대한 실적을 보유한 중소기업에 일정 수준의 지분 참여까지 추진하게 되었다.

회장 주재의 그룹사 사장단 회의에 추진전략을 발표하고 전 그룹 차원으로 확대 추진을 도모하는 단계에 이르렀는데, 하필이면 동일본 대지진(2011.3.11.)과 그에 따른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발생하였다. 대지진으로 발생한 엄청난 크기의 쓰나미가 후쿠시마 원전을 덮쳐 비상발전기 계통을 물속에 잠겨 정전을 일으켜 버렸다. 이로 인해 원자로 내에 여기 상태로 있는 핵분열 잔류 생성물을 냉각 시킬 수 있는 펌프류가 작동되지 못하게 되었다. 고온으로 가열된 핵연료 소결체를 둘러싸고 있는 지르코늄 소재의 튜브가 냉각수인 물과 만나 산화하면서 수소 가스가 발생하게 되었고 축적된 수소가 결국에는 폭발하여 사상 최악의 방사선 재해 사고가 발생하게 되었다. 지나고 나서 생각해 보면 이를 피할 수 있는 여러 기술적 방안을 미리 설계에 반영할 수도 있었다는 아쉬움이 있다. 또한 고가의 원자로를 포기하더라도 대형 사고가 예상된다면 바닷물을 주입해서라도 냉각 시켜야 하는 결단이 필요했는데 미리 Manual 화 되지 못한 사고이다 보니 결국 대형 사고가 되고 말았다.

원자력 관련 사업을 새롭게 추진하는 실무책임자로서 낙담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지만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여파가 향후 어떻게 전개될지 그 당시로서는 파악할 수 없었으므로 예정대로 전략회의가 개최되었다. 물론 불확실성이 커진 상황이라 모두들 당혹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발표 자료의 마지막 결론 부를 두고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그룹 최고경영자는 함축성 있는 그림이나 어귀를 사용하여 회의에서 강조되어야 할 사항을 마무리하는 방식을 선호하셨다. 그런데 후쿠시마 사고의 여파를 생각할 때 무작정 적극적인 사업 추진을 주장하기에도, 그렇다고 소극적이거나 중립적인 결론을 제시하기도 곤란한 상황이었다. 이런저런 의견 교환끝에 토끼가 위기를 당할 경우에 어떻게든 도망칠 수 있도록 최소한 서너 개의 굴을 준비하듯이 우리도 기후변화 대응과 지속 가능한 철강 본업을 위해 원자력이라는 수단을 이용할 수 있는 방안을 준비하는 게 좋겠다는 뜻으로 ‘#교토삼굴(狡兎三窟)’이란 어귀로 발표 자료를 끝맺었다.

그 후 원자력에 대한 상황이 급속하게 변화되면서 추진했던 일이 아쉬움으로 끝나게 되었지만 ‘#교토삼굴’이라는 사자성어는 항상 뇌리에 있었다. 서너 해 전에 1막 인생이 갑작스럽게 종료되었을 때 왜 그동안 ‘교토삼굴’을 준비해 두지 않았는지 후회하기도 했었다. 그렇지만 회사에 다닐 때는 회사 내에서 길을 찾는데 급급해야 했고, 이중 취업 혹은 중복 취업 자체를 사규로 금지시키고 있었으므로 미처 그런 준비를 할 겨를도 없었다. 인생 1.5막인 이제는 짧지 않을 향후 활동할 세월을 생각하여 ‘교토삼굴’을 생각해야 할 것 같다. 자식들도 성인에 이르렀으므로 가족 부양 측면보다는, 전문성이 있는 분야에서 일부 생활비를 확보하면서 그간 마음속에 두고 있었던 ‘하고 싶었던 일’을 하는 것으로 대비해야 하겠다. 일단 일정 금액이 유입되는 1차 수입원으로서 지속적인 직장 생활을 도모하며, 평소 해보고 싶었던 분야에서 1인 Business도 시도해 보며, 아울러 그동안의 경험을 녹여 넣을 수 있는 분야에 대한 투자 사업 등도 추진하며 삼굴(三窟)을 준비해야 겠다. 결국에는 이전처럼 앞으로도 계속 자전거 페달을 밟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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